Archive for 5월, 2011


글쓴이 : 김하중

전 중국대사이자 전통일부장관이었던 김하중의 놀라운 중보기도의 역사 !

하나님께서 살아계신 것을 확신하고 성령안에서 기도하며 무슨 일이든 하나님께 묻고 또 응답 받았던 놀라운 이야기.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아

너희는 여호와를 의지하여라

그는 너희의 도움이시요 너희의 방패시로다 (시 115:11)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마 5:8)

여호와께서 내 음성과 내 간구를 들으시므로 내가 그를 사랑하는도다

그의 귀를 내게 기울이셨으므로 내가 평생에 기도하리로다   (시 116:1,2)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갈 5:16)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롬 8:9)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빌4:6)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그의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그 날에 그의 생각이

소멸하리로다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시 146:3~5)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예레미야 17:9——–

인간의 마음에는 허영심이 깊이 뿌리박고 있어….

허영심이 나쁘다는 글을 쓰는 자들도 잘 썼다는 영예를 얻으려 하고

그 글을 읽는 자들도 읽었다는 영예를 얻으려 한다

—-블레즈 파스칼—–

하나님이여 침묵치 마소서 하나님이여 잠잠치 말고 고요치 마소서 [시 83:1]

신학은 하나님에 관한 사실을 지적인 용어로 표현한다. 인간의 지성으로 하나님에 관한 여러 사실을 이해할 수 있을 때에 비로소 인간은 자기가 이해한 것을 언어로 표현하게 된다. 무한하시고 경외로우시며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이 우리 앞에 나타나시면, 우리는 침묵에 빠지고 우리 마음은 “오, 주 하나님!”이라고 부르짖게 된다. 신학적 지식과 영적 체험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전자는 소문으로 하나님에 대해 아는 것이며, 후자는 직접 교제하며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에 대한 경탄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오늘날 우리는 평정과 평온을 전하는 전도사들에게 속아서 ‘경탄’을 잃어버릴 위험에 처해 있다. 우리는 기독교를 단지 복음주의적 인본주의로 만들어 버리려는 시도에 저항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런 복음주의적인 인본주의는 하나님과 관계된 어떤 것을 보아도 마음에 동요나 열정을 일으키지 않으며 단지 마음 수련을 통한 정신적인 황홀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기도할때 당신은 기도의 말이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애간장을 태우는 기도를 하는가? 아니면 당신이 원하는 것들을 줄줄이 나열하며 점잖게 감사하는가? 만일 후자의 경우라면, 당신이 의식하든지 못하든지 간에 당신의 영적 생활은 침체에 빠질 것이다.

  • 중요한 것은 자신의 음성을 듣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다

<The Holy Spirit> A.W.Tozer————–

복음주의적인 그리스도인들이 성령님을 소홀히 대하는 경향이 지속되고 있는 것은 아무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이런 경향은 무슨 이유에서든지 정당화될 수 없다. 복음주의적 기독교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는다. 매주 거의 모든 교회에서 신자들은 “성부,성자,성령께 영광이 있을지어다”라고 찬송한다. 이렇게 찬송한다는 것은 신자가 의식하든지 못하든지 성령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성령님이 성부와 성자와 동등하게 경배를 받으실 만한 분이라는 것을 인정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예배의 시작에(또는 예배 시작 직후에) 이렇게 찬송 한 다음, 성령님에 대해서 거의 또는 전혀 언급이 없다가 축도 때에 다시 언급하고 있다. 성경이 성령님에게 부여하는 지위와 오늘날 우리가 그분에게 부여하는 지위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성경은 성령님이 성삼위 가운데 한 분이라고 분명히 밝힌다.

<Holy Spirit>A.W.Tozer ——————

성령님은 ‘어떤분’인가? 나는 지금 성령님이 ‘누구’신지 묻지 않고, ‘어떤분’이신지 묻고 있다. 그 분은 다른 존재방식으로 거하시는 분이다. 그분에게는 무게,분량,크기,색 또는 공간의 확장은 없으시지만, 그분은 우리가 존재하는 것만큼 분명히 존재하신다. 열심이 성령님은 아니다. 열의에 찬 신자들이 법석을 떨며 바쁘게 일하는 것을 보았지만, 거기에 언제나 성령님이 계셨던 것은 아니다. 반면 우리가 ‘열심’이라고 부르는 것이 없는 곳에 성령님이 계시는 것을 나는 보았다. 우리는 ‘천재성’을 성령님으로 착각해서도 안 된다. 성령님은 영어로 ‘홀리 스피리트’(The Holy Spirit) 또는 ‘스피리트’(The Spirit)이다. 우리는 흔히 “이것이 베토벤의 ‘정신’(spirit)이다”, “그 연주가는 ‘아주 힘차게’(with great spirit) 연주했다”,”그가 ‘선생의 의도’(the spirit of the master)를 정확히 해석했다”라는 말들을 한다. 그러나 여기에 사용된 ‘스피리트’(spirit)는 성령님이 아니다. 그렇다면 성령님은 ‘어떤분’이신가? 성령님은 인격체이시다. 이 사실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성령님은 인격체가 갖는 모든 속성과 능력을 소유하신 분이다.

<The Holy Spirit>A.W.Tozer…………………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라면 나를 해할 권한이 없었으리니

그러므로 나를 네게 넘겨 준 자의 죄는 더 크다 하시니라 <요 19:11>

성경의 가르침을 받았지만 성령님의 가르침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어디에서나 발견된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들의 지성(知性)으로 진리를 알 수 있다고 믿는다. 어떤 사람이 기독교의 기본적인 교리를 붙드는 것을 볼 때 우리는 그가 하나님의 진리를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다. 성령님이 계시지 않으면 진리도 없는 것이다. 아무리 머리가 좋은 사람이라도 하나님의 신비 앞에서는 바보처럼 되어버릴 수도 있다. 성경이 기록되기 위해서 성령님의 감동이 필요했듯이, 우리가 성경의 진리를 깨닫기 위해서도 성령님의 감동이 필요하다. “위에서 주지 않으셨더라면”(요 19:11) 우리는 깨달음을 얻을 수도 없다. 위에서 허락하신 진리가 진짜 진리요, 이 진리가 우리 모두의 희망이다. 왜냐하면 진리를 깨달을 수 있는 은사는 하늘로부터 주어지기 때문이다.

  • 거룩하게 되는 것은 복된 일이며, 진리를 깨닫고 거룩하게 되는 것은 훨씬 더 복된 일이다. 진리를 전해 듣고 깨달음을 얻고 올바로 판단하는 가운데 온전한 사랑의 복을 누리는 사람은 복된 사람이다

<The Holy Spirit>A.W. Tozer————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 (마태복음 3:11)

세례 요한은 ‘불’의 상징을 이용했다. 오순절에 성령님이 임하셨을 때에도 ‘불’의 상징이 사용되었다.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행2:3)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제자들에게 임하신 분은 바로 하나님이셨다. 유한한 인간들의 눈에 성령님은 불로 나타나셨다. 구약성경을 배워서 잘 알고 있던 제자들은 이것이 무슨 의미인지 알았을 것이다. 구약의 장구한 역사 동안 이스라엘 민족에게 불로 나타나셨던 하나님이 이제 제자들 중에 불로 임하여 계신 것이었다. 그분은 외부로부터 그들에게 찾아오셔서 그들의 중심으로 들어오신 것이었다. 구약시대의 하나님의 임재는 성전의 시은좌(施恩座)위에서 빛을 발하셨으나 이제는 그들의 이마 위에서 빛을 발하신 것이다. 이것은 그들의 본성 안으로 침투해 들어오신 불의 외적(外的)상징이었다. 오순절의 성령강림은 하나님께서 구속(救贖)받은 사람들에게 자신을 주신 사건이었다. 오순절의 불은 새로운 연합을 보증하는 표적이었다.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제자들은 불의 사람이 되었다.

  • 중생은 새 마음을 주며, 불과 성령의 세례는 깨끗한 마음을 준다. 다시 말해서, 중생을 통해 새 마음을 갖게된 우리는 성령과 불의 세례를 통해 깨끗한 마음을 갖게 된다

<The Holy Spirit>A.W. Tozer—————-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로마서 12:1)

성령님의 성화(聖化)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게 준비되었다.이것은 성경이 선포하는 진리요, 수많은 사람들이 무수히 증거한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닥칠 수 있는 가장 큰 위험은 우리가 하나의 죄를 버렸지만 그 대신 다른 죄가 우리에게 생겼는데도 우리가 죄에서 구원받았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이것은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위험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낙심하거나 뒤로 물러설 필요는 없다. 다만 우리는 경계하는 마음을 가지고 긴장하면 된다. 예를 들어서 우리는 우리의 회개가 단지 장소만 바뀌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과거에 우리가 먼 나라에서 돼지 떼들과 어울리며 죄를 지었다면 지금은 교인들과 어울리며 죄를 지을 수 있다. 다시 말해서,지금 우리가 겉보기에 과거보다 훨씬 더 깨끗해지고 존경을 받을 만한 것처럼 보여도 과거에 비해 조금도 깨끗해지지 않은 상태일 수 있다.

  • 당신의 영혼이 성령님을 받아 들이고 주님의 계속적인 임재 안에 거하기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당신의 영혼 깊은 곳에서 당신의 죄를 깨달아야할 뿐 아니라 당신의 죄성(罪性)도 깨달아야 한다

<The Holy Spirit>A.W. Tozer—————-

—롬 3:10~18—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그들의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신이여,저를 절망케 해 주소서.

당신에게서가 아니라,저 자신에게서 절망하게 하소서.

저로 하여금 미혹의 모든 슬픔을 맛보게 하시고,

온갖 고뇌의 불꽃을 핥게 하소서.

온갖 모욕을 겪도록 하여 주시옵고,

제가 스스로 지탱해 나감을 돕지 마시고,

제가 성장하는 것도 돕지 마소서.

그러나 저의 모든 자아가 분쇄되거든

그 때에는 저에게 가르쳐 주소서.

당신이 그렇게 하셨다는 것을….

당신이 불꽃과 고뇌를 낳아 주셨다는 것을…

기꺼이 멸망하고 기꺼이 죽으려고 하나

저는 오직 당신의 품속에서만 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헤르만 헤세—–